IJN의 독트린 일상 & 잡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야마토급 전함의 진짜 문제

러일전쟁 쓰시마 해전에서 도고 헤이하치로가 대박을 터트리면서 '함대결전으로 한타 싸움을 벌여 승리' 라는데 목을 매게 됩니다만, 애초에 이런 결론이 나온 이유가 제대로 된 강대국과 진짜 총력전,장기전,소모전을 할 국력이 없다는 데서 나온 것이었죠.

그래서 점감요격작전이라는 것이 짜여지기는 했는데...이건 어디까지나 진격해오는 침략자의 함대를 일본 근해까지 끌어들여서 요격하는 방어전략이었고 2차대전처럼 선빵을 날려 나와바리를 땅따먹기하는 상황에 대한 대비는 전혀 안 되어 있었던 겁니다. 연합함대 내부에서도 그나마 좀 머리가 있는 부류는(보통 그런 부류로 여겨지는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보신주의에 철저했던 결과 대세를 따라 '우디르'한 뒤 진주만 공습을 들고 나왔습니다만)41년 말의 개전을 반대했다는 이야기가 있긴 합니다.

크릭스마리네가 그랬듯, IJN도 자신들이 상정하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 내던져지면서 전쟁이 시작되었고 그러다 보니 삽질의 연속이 되었죠.

당시 제국주의 열강 중 최약체였던 제국주의 일본의 경제력으로 당시 세계 3위의 해군력 건설에 이어 야마토급 같은 거함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침략해오는 강대국의 해군력과 근해에서 결전을 벌인다'라는 목적에 우선순위를 둔 결과고, 정상적으로 해상 통상호위나 대잠, 보급역량을 균형적으로 갖추자면 IJN의 규모가 그렇게 확대될 수가 없는 게 당연합니다. 뭐 이거야 20세기 초부터 군국주의와 군부 밥그릇 싸움으로 달린 결과고 IJA도 숫자만 불리느라 장비면은 엉망이었지만.

일단 배경은 여기까지고, 그럼 전쟁이 시작된 와중에서 왜 이런 초전함을 아끼고 있었는가 하면...

높으신 분들이 전장에 안 가기 위해서


믿기 힘들겠지만 사실입니다. 아무래도 한국의 입장이 입장이다 보니 제국주의 일본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평가는 어려운 면도 있고 한편으로는 일빠도 득시글거리는 게 현실이지만 문자 그대로 파도파도 문제만 나오는 게 파시스트 군국주의자의 현실입니다. 그나마 나치 독일은 반증연구가 좀 많이 나왔지만.

우선 연합함대라는 조직 자체가 함대결전을 위해 조직된 해군의 핵심조직이고, 전략상 여기에 힘이 실리면서 또한 밥그릇 싸움의 대상이 된 것이죠, 예시를 들자면 도고 헤이하치로 시절의 연합함대는 충무공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있던 시절의 조선 수군이고, 2차대전기의 연합함대는 원균이 통제사로 있던 시기의 조선 수군이라고 보면 이해가 빠를까요...

가령 일본군 상층부 치고는 그나마 개념이 좀 박힌 인물로 알려진 개전 당시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입니다만 전술 레벨에서는 진주만 이후 실책의 연속인데, 사실 이 사람은 개념인이나 멍청하다는 평가보다는 츠지 마사노부와 흡사하게 머리는 좋지만 그걸 자기 보신에만 쓰는 부류에 가깝지 않은가 하는 게 관련자료를 뒤져본 후의 생각입니다.

본격적으로 미국의 쇼미더머니 파워가 발휘되기 시작한 43년 이후로는 무슨 짓을 해도 승산이 없는 게 확실했지만, 진주만 공습으로 주력함 차이를 벌려놓은 것도 있어 42년 중에는 연합함대의 전력을 문자 그대로 함대결전을 위해 집결시키면 일본에 승산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미드웨이에서도, 과달카날에서도 모아서 가는 게 아니라 근해 방어전을 위해 짜여진 점감요격작전의 계획대로 항공모함-구축함-잠수함-(전함)식의 축차투입을 합니다. 보통 적 제공권 하에 전함을 돌입시킬 수 없었다는 핑계가 이 주제에서 자주 보이는데 실상은 전혀 다릅니다. 제로센이나 일식육공이 맷집이 빈약하네 어쩌네 하는 문제를 다 감안하더라도 42년까지는 일단 미국에 비벼볼 수는 있는 항공력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결전이 아니라는 핑계로 딱가리들만 먼저 내보내 놓고, 그 딱가리들이 다 소모된 뒤로는 '제공권이 없으니 못가요'라면서 몸을 빼는 것이죠. 진짜 점감요격작전에서 상정한 대로 본토 방위전이었다면 그런 경우에도 본토 항공대의 지원이 있으니 괜찮지만, 공세를 펼치면서 그런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고,

항모전력이 다 소모되고 난 후에 제공권이 없으니 주력함은 못가고 공고급이랑 중순양함으로 야습을 할 게 아니라, 류조가 새러토가를 몸빵하고 쇼카쿠가 엔터프라이즈와 드잡이질을 벌이고 있는 바로 그 때 야마토를 비롯한 주력함대를 돌입시켰어야 하는데 축차투입을 했으니.

물론 결전에 대비한 전력을 갖춘답시고 군수지원능력을 등한시한 당시 IJN의 사정상 쉬운 일은 아니었겠지만, 적어도 미드웨이에서는 투입된 포인트는 달랐지만 연합함대 전 전력을 동시 투입 가능했고, 과달카날 전역의(영화화된 '아부라가 나인다'가 유명하죠)사정도 실은 투입할 견적도 안 나오는 전함전력을 근 1년 반 정도 트럭 정박지에 전진배치시키면서 기름을 낭비한 결과(대략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어도 하루 중유 2천 톤, 작전활동이 있으면 하루 6천 톤 정도인데 그렇게 1년 반...)자초한 것일 뿐입니다.

오다 준이치(御田 俊一)라는 연구가는 '제국해군은 왜 패배했는가'라는 저서에서 IJN의 대함거포주의가 실패한 이유를 상층부가 겁먹고 몸을 사린 결과라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위험한 곳에는 절대 가지 않으려 했던 야마모토가 암호가 뚫려 미군에게 격추된 이후로도 여전했고, IJN이 남은 모든 여력을 모아 미군의 필리핀 상륙을 저지하려 했던 레이테 만 해전 한 달 전 연합함대 사령부는 사령부를 본토로 이동시키며 사실상 적전도주합니다, 이쯤 되면 거의 육군의 삼대오물 도미나가 교지에 필적하는 행각이죠, 자기네들만 본토로 도망쳐 놓고 함대에는 '미군과 동귀어진해라'라고 명령을 내려봤자 사기가 높을 리 없고, 그러다 보니 그 결과가 목표를 눈앞에 두고 거짓정보에 낚여(허위무전을 받았다고 하지만, 정황을 판단해 보면 단순히 개죽음하기 싫었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돌아온 일명 구리다 턴이죠.

덧글

  • 존다리안 2017/05/24 17:11 # 답글

    그러게 일본제국 간부들의 머릿속이 의문이더군요. 대체 이기려고 싸운 건지 뭘 하려 싸운 건지...
  • Rain 2017/05/24 17:19 #

    이시와라 간지가 도조 히데키를 평가한 대로 아예 생각이라는 게 없었거나, 본문에서 말한 야마모토나 츠지처럼 조직보다도 개인의 보신이 우선이었던 것이겠죠, 후자같은 부류는 어딜 가나 있습니다.

    1차대전기의 독일 군부처럼 당시 일본 육해군이 아예 통제라는 걸 받지 않는 조직이었고 여타 정부기구는 단지 이들의 예산셔틀이라는 상황에서의 밥그릇 싸움이라는 면도 있겠습니다.
  • KittyHawk 2017/05/24 21:57 #

    각시수련님이 전한 '해군 반성회의'의 내용을 전하자면 해군의 경우 국가전략, 전쟁의 승리 같은게 아니라 군령부의 정치적 입장, 육군의 압력을 못 이길 경우 해군이 입게 될 피해 때문에 일을 벌인 경향이 있었다는 충격적인 것이 실려있더군요.
  • KittyHawk 2017/05/24 21:50 # 답글

    일본군 전반의 사고 관념의 문제에 관해선 이런 일화들도 존재합니다. 단편적으로 알게 된 바로는 이시와라가 미영과도 싸워야 한다는 의견을 드러내자 이시와라의 선배이자 통제파의 수장인 나가타가 '대체 왜 미영과 싸워야 하나?'라며 어이없어 했고, 하사관으로서 2차 대전 종군 경험을 가진 어느 일본 공화파 인사는 자신이 간부일적에 회의에서 일반 상식론에 입각한 의견을 개진했는데 그게 죄 아닌 죄가 되어서 구타를 당했었다고 암울한 회고를 남긴 기록을 본 적도 있었지요. 각시수련님이 소개한 참전자들이 주관한 '일본 해군 반성회의' 다큐와 합쳐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훌륭한 포스팅에 엄지 손가락을 듭니다.
  • 2017/05/24 21:5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Rain 2017/05/24 22:51 #

    제국주의 일본의 시스템은 근대국가라기보다는 봉건제에 가까웠고 거기에 각 부서와 개인의 보신주의가 합쳐진 것이라고 보면 의외로 단순한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라라 2017/05/25 00:48 # 답글

    뇌물은 과자로 주세요. 라는 일본소설 보면 보신주의에 대해 잘 나오는데 그게 그대로 간듯
  • Rain 2017/05/25 12:32 #

    그 소설은 못 봐서 뭐라고 말할 수는 없네요.
  • 금린어 2017/05/25 12:02 # 답글

    미드웨이에서는 주력함대가 몰려가면 미군이 안 낚일수도 있다는 판단으로 전함전력은 후방에서 응원만 했다는 내용을 본 기억이 나는데, 진위는 모르겠지만 전투의 전개를 보면 일본 항모들은 제대로 된 호위를 못 받고 줄줄이 격침됐다는 느낌은 듭니다. 사우스다코타 등이 필사적인 방공전으로 이름을 떨친 것을 생각해도 일전함들은 밥값을 전혀 못한듯.
  • Rain 2017/05/25 12:33 #

    그런 이야기가 있기는 한데 이른바 항공주병론자라는 야마모토가 진주만이나 미드웨이 같은 중요한 결전에서까지 1항공함대를 직접 지휘할 생각은 안 하고 전함에 타서 후방에 빠져있었다는 걸 알게 된 게 본문의 결론에 큰 영향이었습니다.
  • 금린어 2017/05/25 15:38 #

    그러고보니 제가 예전에 반 장난으로 나가토 함장 리스트를 만든적이 있는데 대좌시절을 나가토 함장으로 보낸 엘리트 장교들 중에 전사한 인물은 4명밖에 안되더군요. 그나마 한명은 아부라가 나인다 이후 항구에 묶어두고 대공포대로 쓰던 시절에 재수없게 함상에서 폭탄맞아 죽음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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